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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 알아보기

한국의 전통 가옥2 "기와집"

by 뀨동 2023.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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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으로 기와를 사용한 집. 와가(瓦家), 한옥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렸을 때 가장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가옥의 형태이다.

 

 기와는 모래가 섞인 양질의 점토를 바탕흙으로 하여, 와통 및 막새틀 등의 제작 도구를 사용해 일정한 모양으로 성형하여, 가마 속에서 1,000℃이상의 높은 온도로 구워낸 건축 재료이다.


기존의 주거 형태였던 초가집이 6개월 혹은 1년이면 지붕 소재가 썩어버려 자주 교체해줘야 하던 것을 반영구적인 기와로 대체하여 사용한 것이다. 한국 대부분의 기와집은 찰흙으로 만든 검은색 기와를 많이 사용하였다. 전면의 기둥들과 후면의 기둥들을 각각 일자로 연결하는 창방과 평방, 전면과 후면의 기둥을 앞뒤로 연결하는 보, 그리고 서까래와 그를 받치는 도리가 핵심 자재다. 지역이나 재산, 지위에 따라 다르지만 주로 나무, 흙, 돌, 짚 등의 재료로 기와집을 만든다. 나무와 짚으로 벽의 뼈대를 만들고, 황토를 발라 벽을 만들어 주면, 황토가 적당한 시간이 지나 어느 정도 굳어서 만들어진 벽에 한지를 붙여 마무리한다. 돌의 경우엔 밑돌로 쓰며 온돌을 설치하고 주방과 연결해 준다. 그렇기 때문에 주방은 방보다 낮은 곳에 위치하게 되고 남는 지붕 칸에 다락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또한 초가집과 기와집에는 온돌과 마루가 있어요. 온돌은 방에 넓적한 큰 돌을 놓고 흙으로 덮은 후, 아궁이에 불을 때어 방바닥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고, 마루는 바닥과 사이를 띄우고 널빤지를 깔아 놓은 형태이다. 온돌과 마루는 오직 우리나라의 가옥에서만 볼 수 있는 형태이다. 온돌과 마루가 한집에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따뜻한 온돌방에서 지내며 겨울을 보내고, 시원한 마루에서 낮잠을 즐기며 무더운 여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기와집에는 지붕 처마가 있다. 처마는 지붕이 벽보다 조금 더 바깥쪽으로 나와 있는 부분을 말한다. 위쪽에서 부는 비바람을 막아 줄 뿐 아니라, 1년 내내 집 안으로 적당한 햇볕이 들어오도록 했다.

기와집은 양반 중에서도 신분이 높은 사람이 거주할 경우 푸른 유약을 발라 만든 청기와를 사용해 지붕을 만들기도 하였다. 전통적으로 부유층이나 양반들만이 기와집을 짓고 살고 있었는데 일반 농민들이 기와집을 지어 산다고 해도 특별한 규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 기와를 굽는 가마 자체가 손꼽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기와 자체가 상당히 비싸 쉽게 구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붕을 기와로 얹으려면 품이 많이 들어서 일반 농민들이 짓고 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기와집이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주택으로 분류되었다. 물론 양반들이라고 해서 기와집을 아무 규제 없이 짓고 살 수 있었던 건 아니고 크기의 제한이 있어서 99칸을 넘는 집을 짓고 살 수는 없었다. 99칸이 넘는 기와집은 무조건 궁궐이나 관아, 성균관 같은 대형교육시설만 가능했다. 기와집 99칸은 180평에 해당하는 크기이기 때문에 일반인들 입장에서도 매우 넓은 것은 매한가지였기 때문에 짓는데 품이 많이 들어 짓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세도가나 전국에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거상급은 되어야 99 칸집을 짓고 살 수 있었다. 또한 조선시대 기와집은 전근대시대 세계 모든 문명과 같이 남자와 여자가 생활하는 공간이 구분되어 있었다. 기와집이라고 해서 모두 넓은 집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양 도성 내부 같은 도심지에 위치한 기와집의 경우에는 집이 좁아지는 경향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일제 시기 때 개량형 기와집이 등장하기도 했는데 수도권의 인구가 지방에서 올라오는 인부들로 인해 날이 지나갈수록 증가하게 되면서 새로 집을 지을 땅이 부족해져 갔다. 그에 따라 땅값이 점점 오르게 되면서 궁여지책으로 기존의 기와집보다 훨씬 좁게 만들면서 2층까지도 만든 개량형 기와집이 등장하게 되었고 현재 서울에 남은 기와집 가운데서 상당수가 이런 개량형 기와집이다.

 

 기와집 지붕의 형태는 조선왕조의 신분제도의 영향을 받아 지붕의 형태가 다르게 보이기도 하였는데 왕이나 양반의 경우는 장식적이고 호화롭게 보이는 기와지붕을 사용하였다. 

 

- 맞배집 : 지붕구조가 제일 간단한 형태로, 마주 보는 두 개의 지붕면이 있고 측면에는 지붕이 없는 대신, 박공이라는 삼각형의 벽이 특징이다. 보통 행랑, 곳간 등의 간단한 건물 혹은 사당 건물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흔히 팔작지붕이 아름답고 대중이 선호하는 경향이 있지만 맞배지붕만의 심플하고 경건한 느낌이 있기 때문에 자주 사용되었다. 맞배지붕으로 지어진 건물 중에 가장 으뜸은 단연 '종묘'일 것이다.

 

-우진각집 : 마주 보는 지붕 전후와 좌우, 네 면 모두가 경사지붕으로 이루어져 있는 집이다. 지붕 앞뒤에서 보면 사다리꼴 형태이고, 측면에서는 삼각형 형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격식을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민가나 초가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 팔각집 : 팔작이란 우진각집의 양쪽 측면 지붕 윗부분을 수직으로 잘라낸 모양의 지붕이 특징이다. 이 경우, 수직 처리된 부분의 삼각형 모양을 합각이라고 한다. 맞배지붕의 특징이 엄숙하고 경건한 느낌이라면 팔작지붕은 화려한 느낌을 준다. 이렇게 보이는 모습이 가장 화려하고 장식적이기 때문에 궁궐과 불교 건축의 중요한 건물에서, 살림집에서는 안채, 사랑채 등에서 많이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한옥, 기와집 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지붕 모양이다.

 

가장 안정적인 구조는 맞배지붕인데, 위에서 내려다보면 사각형의 두 면이 만나는 구조이다. 측면은 따로 지붕을 만들지 않았다. 비가 내릴 때 벽 구조를 보호하기 위해 서까래를 따라 한자로 8자 모양으로 크고 넓은 나무를 다는데, 이를 '박공'이라고 한다. 그리고 박공 밑에 나무판을 대는데 이를 풍판이라고 한다. 비와 바람으로부터 벽을 보호하기 위하여 대는 널빤지로, 사람 사는 집은 온기가 있어 이를 수분 제거를 위한 것으로 사용되어 풍판의 필요성이 점점 줄어들었으나, 맞배지붕은 주로 사찰이나 장서 보관, 창고, 제실 등으로 사용되어 구들을 놓지 않고 마루로만 구성되기에 풍판이 더욱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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