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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 알아보기

한국의 전통 공예 "나전칠기"

by 뀨동 2023.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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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전칠기(螺鈿漆器)는 야광패(貝), 전복이나 조개 등 특정한 어패류의 껍질을 잘라 모양을 내어 붙이고, 옻칠한 물건을 가리킨다. 보통은 나무제품에 장식하고 옻칠했지만 드물게 금속제품에 장식한 경우도 있다. 나무 바탕에 문양을 직접 새겨 박아 넣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옻칠 바탕 위에 자개를 붙인 뒤 다시 옻칠을 올려 표면을 연마해서 무늬를 드러나게 하는 기법을 많이 사용했다. '나전칠기'라는 명칭에서 '라/나(螺)' 는 소라, '전(鈿) '은 '비녀, 장식하다'라는 뜻으로 풀이를 하면 '소라로 장식하고 옻칠한 기구'이다. 다만, 금이나 은판을 붙여 만든 것을 평탈(平脫)이라고 부른다. 한국, 중국, 일본에서 제작되었는데 삼국 공통으로 나전이라는 한자어를 사용했다. 나전기법은 중국 당나라 때에 성행했는데 초기에는 대부분 하얀색의 야광패를 사용한 반면,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조개껍데기를 이용했는데, 이 장식에 사용되는 조개껍데기 조각을 순우리말로 '자개'라고 불리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자개'라는 단어를 예로부터 사용해 왔다. 공예에 사용되는 조개껍질의 안쪽 부분에는 오묘한 색을 내며 반짝이는데, 아름다운 빛깔을 내게 하는 탄산칼슘의 무색투명한 결정인 진주질 성분 때문에 빛을 받았을 때 프리즘처럼 색광 현상을 일으켜 오묘한 색의 문양을 낼 수 있다.

그 전의 우리나라의 공예는 중국이나 일본에 비하면 매우 단조로운 편이었다. 생칠, 흑칠, 주칠과 자개를 활용하는 게 대부분이었지만 옻칠의 기술이 좋아지는 만큼 우리나라 공예에 개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옻칠의 흔적은 청동기시대 유물에서도 발견되었지만, 낙랑이라는 인물에 의해 한문화가 유입되며 더욱 활성화되었다. 옻칠의 주재료인 옻나무는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하고, 그중에 산지에서 나고 자란 옻나무의 옻 수액이 일반 옻나무보다 질이 더욱 좋았다고 한다. 고대에는 옻나무가 얼마나 자생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옻나무 심는 것을 국가적으로 장려하고 관리를 할 만큼 중요시하였다. 조선시대 나전칠의 전형적인 무늬는 모란당초무늬로 옷을 넣는 의함 또는 의장 표현되기도 하였는데 만개한 꽃과 꽃봉오리, 덩굴줄기를 전복자개로 오려 붙여 표현되어 만들어졌다. 전체적으로 보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줄기와 꽃의 모습은 율동감을 주고, 속도감을 느낄 수 있어 일본이나, 중국의 것과는 전혀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모란당초무늬는 임진왜란을 이후에 일본의 나전칠기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임진왜란 후에 소나무, 대나무, 매화, 학, 사슴과 같은 십장생을 주제로 하는 도안으로 바뀌었다. 도안의 변화로 인해 화장구나 소반, 장롱 등의 가구로 확대되어 대중화하였다. 19세기에는 나전기법이 조금 더 다양해져 문양보다는 자연의 사실 묘사가 더 많아지고, 거북이 등껍질 같은 기하학적인 무늬를 가구 전체에 표현한다든지, 자연 풍경을 표현하는 것이 많아진다. 이는 사회구조가 바뀌고 신흥상업자본층이 생기며 그들의 취향이 요구되고, 장인들 또한 다소 기업화된 공방에서 제품을 양산함에 따라 생긴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현대의 나전칠기 공예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재현의 길을 가고 있다. 그것은 20세기 초부터 일본에 의한 새로 유입된 문물에 의한 혼란과 산업화를 겪으며 생긴 수공예가 낙후됨의 결과이다. 일제강점기 동안에 이왕직이라는 인물의 소관인 미술품제작소에 나전부 개설하고 흩어진 기존의 우수한 기능보유자를 모아 젊은 기술자를 걸러냈다. 여기에서 기술지를 일본사람이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들이 주는 동안에 따라 나전칠기를 제작하였다. 10여 년 뒤인 1922년에는 이왕직미술품제작소에 떨어져 나와 조선 미술품제작소를 세워 제품생산에 주력하였다. 하지만 나전칠기가 출품되었지만 대부분의 출품작이 일본인들의 취향과 수요에 맞게 전통공예의 독자성이나 예술적인 면모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전통공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생활공예품으로써의 나전칠기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국가적으로 나전칠기를 보호·육성하기 위해 1966년 중요무형문화재 나전장으로 지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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