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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 알아보기

한국의 전통 놀이2 "고싸움놀이"

by 뀨동 2023.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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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싸움놀이는 두 개의 고를 공중에서 서로 맞부딪치고 상대의 고를 아래로 눌러 제압하는 방법으로 승부를 겨루는 성인 남자 놀이이다. 고는 긴 줄의 앞부분을 원의 형태로 동그랗게 매듭지은 것을 말하는데 이 '고'를 이용한 놀이이기 때문에 고싸움, 고쌈, 고줄싸움 등으로 말한다. 고싸움놀이는 줄다리기와 같이 한 해의 풍년을 비는 의미로 세시풍속 놀이로서 전승되어왔다. 또 다른 의미로는 따로 기록이 없어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전해오는 속설에 의하면 한 마을에 황소가 쭈그리고 앉아 있는 와우상(臥牛相)이 있어 터의 기운이 세기 때문에, 그 거센 기운을 잠재우기 위하여 비롯되었다는 속설이 있다. 하지만 와우상이 있는 마을보다 다른 마을에서 고싸움놀이가 더 왕성하게 유행했기 때문에 속설의 근거로는 약한 편이다. 이 고싸움놀이는 현재까지도 광주·나주·강진·장흥 등 영산강과 탐진강을 낀 전라남도 평야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고, 1970년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국가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고싸움놀이는 대외적인 각종 문화행사에서 시연되어 문화재적 가치를 보여주었으며, 특히 1986년 아시아 경기와 1988년 올림픽에 개막식 공개 행사로 시연되어 한국인의 강한 패기를 세계적으로 널리 알리게 되었다.

 

 대개 고싸움놀이를 할 때는 보통 상촌(上村)과 하촌(下村)이 각각 편을 나누어 겨룬다. 상촌과 하촌의 대표들이 고싸움을 할 것을 합의하고 날짜와 장소를 정한다. 두 편은 각각 고를 메고 정해진 마을로 가서 시위를 하며 기세를 올린다. 고 위에 줄패장이 타고서 소리를 하면서 행렬을 지휘한다. 해가 지고 달이 뜰 무렵에는 횃불을 든 횃불잡이가 행렬 맨 앞에서 길을 인도 하고 그 뒤로는 동부 편은 청룡기, 서부 편은 백호기의 마을 깃발과 기수들, 농악대가 뒤따르고, 그 뒤에 고를 멘 사람들이 따른다. 고의 몸체는 장정들이 메지만, 뒷부분의 꼬리줄은 부녀자 20-30명이 잡고 따른다. 마을 앞 보리밭이나 공터에서 두 편이 만나면 서로 신경전을 하다가 고싸움이 시작된다. 줄패장이 ‘밀어라’ 하는 명령을 하면 상대방의 고를 향해 돌진한다. 고가 부딪쳐 공중으로 높이 치솟게 되면서 놀이꾼들의 몸싸움이 격렬해진다. 서로 밀고 밀치고, 솟았다 내렸다 하는 과정을 여러 번 되풀이하는 사이에, 농악대는 자기 마을을 응원하기 위해 농악을 치면, 구경꾼들도 신이나 같은 편의 고쪽으로 수백 명이 모여들어 합세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부상자가 나오거나 전열이 흐트러지면 줄패장이 ‘빼라’라고 명령을 내려서 전열을 정비한다. 이렇게 몇 번이나 부딪치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상대방의 고를 눌러 땅에 닿게 하면 승부가 갈린다. 고가 부서지거나 땅에 닿아 승부가 일찍 나는 경우도 있지만, 쉽게 승부가 나지 않으면 며칠씩 계속하기도 했으며, 그래도 승부가 나지 않을 경우 2월 초하루에 고를 풀어 줄다리기를 해서 승부를 냈다고 한다. 또한 승부가 났더라도 진 편이 다시 싸움을 걸어오면 거절치 않고 하기 때문에 여러 날을 고싸움이 계속된다고 한다. “여자 편(하촌)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라는 말이 있지만 그것에 매이지 않고 최선을 다해 승부를 겨루었기 때문에 매우 격렬하게 치렀다고 한다. 고싸움이 끝난 후 농사를 많이 짓는 사람들이 술값을 내놓고 줄을 가져다가 썰어 퇴비를 만들었다.

 현재는 명칭을 변경하여 고싸움놀이에서 광주칠석고싸움놀이로 바뀌었다. 고싸움놀이는 원래 광주광역시 남구에 있는 칠석동 마을에 전하는 민속놀이로 오늘날에는 고싸움놀이를 보존하기 위해 전수관을 따로 운영하고 있고, 여러 사람에게 알릴 수 있도록 고싸움놀이 축제를 개최하고 있으며, 체험과 같은 테마관을 꾸준히 운영하고 있다. 고싸움놀이를 직접 체험도 가능하지만, AR과 같이 다양한 방법으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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